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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성찰에 인색한 안전학계

작성자
권영국
작성일
2023-07-07 16:30
조회
420
자기 성찰에 인색한 안전학계

[이슈&인사이트]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23.07.04 08:19

정진우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안전공학과 교수

우리나라 안전수준이 낮은 이유는 뭘까. 안전에 엄청난 비용을 쏟아 붓는데도 성과가 저조한 원인은 뭘까. 법제의 엉성함, 행정기관의 비전문성 등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안전분야 학계의 수준이 낮은 것도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다. 양적으로는 우리나라만큼 안전학자가 많은 나라가 없다. 그러나 역량은 선진국과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낮다. 학자의 수가 부족한 게 아니라 질이 문제인 것이다.

사회과학의 아버지로 평가받는 막스 베버는 한 강연에서 학자가 갖춰야 할 자질에 대해 "중요한 문제에 침잠할 능력이 없는 사람은 학문을 단념해라. 학문에 대한 도취, 열정과 소명의식이 없는 사람은 다른 일을 해라"라고 일갈했다. 우리나라 안전학자들 중 베버의 요구를 반이라도 충족하는 학자가 얼마나 될까. 베버를 들먹일 필요도 없이 안전에 관한 학문을 한다고 평가받을 만한 학자는 손가락에 꼽을 정도다.

세간에선 안전공학과 교수를 위시한 안전학자들을 보고 "정작 안전을 모른다. 무늬만 안전학자다", "안전을 오염시키고 있다", "학문보다 돈벌이에 치중한다"는 등 혹평이 자자하다. 제대로 된 학식을 갖추지 못하다 보니 결과적으로 안전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비판을 모르는 건 안전학자 자신들뿐이다.

학자들의 안전에 대한 이론과 문제의식이 실무자보다도 떨어진다는 지적이 공공연하게 들린다. "이론 없는 경험은 맹목적이고, 경험 없는 이론은 지적 유희에 불과하다"(이마뉴엘 칸트). 안전학자 대부분은 안전에 대한 경험과 이론 모두 빈약하다. 경험이 있어도 이론에는 문외한이다. 문제는 부족함을 메우려고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로 인한 피해는 학생들에 한정되지 않고 우리 사회 전체에 미친다. 교수 타이틀만 갖고 있으면 전문성이 없어도 전문가로 인정돼 공공기관과 기업의 평가·심사위원, 시험출제위원으로 위촉되기 때문이다.

학생들의 잠재력을 끌어올리지 못하고 학습 방향성도 제시하지 못하는 게 안전학계의 현실이다. 애꿎은 학생들이 안전에 대한 전문성도, 사명감도 부족한 교수들의 희생양이 되고 있다. 안전과 접목시킬 생각 없이 다른 학과에서도 얼마든지 수강할 수 있는 과목을 가르치는 데 급급하다. 기본서 없이 파워포인트로만 알량하게 수업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수업이 머리에 남는 게 없고 실무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불만이 높을 수 밖에 없다. 안전공학과를 현재처럼 운영할 거면 학생들을 위해, 정부와 기업의 착각을 유발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차라리 없애는 게 낫다는 말까지 나온다. 학과 명칭과 커리큘럼의 혁신이 절실히 요구되는데도 무지와 기득권에 갇힌 교수들이 무작정 반대를 한다.

학계는 모름지기 정부 정책과 기업 실무에 이론적 자양분을 제공해야 한다. 그런데 안전학계는 이런 역할을 못하고 있다. 못하고 있는 것에 대한 인식도 없고 부끄러움도 느끼지 않는 것 같다. 안전의 기초뿐만 아니라 안전부서의 위상과 역할조차 모르고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수요자는 안중에도 없다. 오죽하면 세금과 등록금만 축낸다는 비판마저 나오겠는가.

안전학계의 또 하나의 병폐는 비판적 사고가 결여돼 있다는 점이다. ‘안전학계는 비판의 무풍지대라는 비아냥이 들리기도 한다. 안전에 대해 모르거나 무관심하다 보니 법제도와 정부정책, 현안사항에 대한 관심과 문제의식이 약하다. 정부를 견제하고 비판하는 학자의 본연의 역할보다는 정부의 들러리 역할을 하는 어용학자가 많은 이유이다. 학회가 아카데믹하지 않고 아이러니하게 학술대회에 학술토론회가 없다.

안전 관련 자격(면허)도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안전 분야는 초급자격증뿐만 아니라 기술사, 지도사까지도 기본서 공부 없이 기출문제만 공부해도 어렵지 않게 합격할 수 있는 건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이렇게 자격(면허)이 역량을 높이는 수단이 되지 못하는 건 학자들이 주축인 출제위원부터 안전의 대한 지식이 미흡한 탓이 크다. 기출문제나 지엽적이고 단편적인 사항 위주로 출제를 하게 되는 주된 이유이다.

 

안전학계만큼 존재감이 없는 분야가 있을까 싶다. 안전학의 특성과 학문 흐름을 읽지 못하고 개혁의 저항세력이 되고 있다. 안전학계에 몸담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부끄럽기 그지없다. 사회의 안전이론을 견인하기는커녕 산업계의 수요에조차 부응하지 못하는 학계의 잘못된 관행을 더 이상 이대로 놔둬선 안 된다. 훗날 역사의 가혹한 평가를 받지 않기 위해서라도 혁신해야 한다. 사회는 묻고 있다. 누구를 위한 안전공학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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